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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단체전 ⟪공기묘사(空氣描寫); Running on empty⟫ 서문





공기묘사(空氣描寫); Running on empty

안두진











오늘날 존재하는 다양한 양상의 회화들 사이에는 오직 ‘그린다’라는 공통점만 남은 것 같다. 이러한 입장은 한동안 회화성과 그리기에 관한 방법론을 주목하였다는 것과도 일치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회화적 양상 속에서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그리는가?”

영화 <허공에의 질주>에서 리버 피닉스는 그려진 건반 위에서 피아노 연주를 연습한다.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피아노 연주는 그려진 피아노 건반의 이미지처럼 가상으로 존재한다. 하나의 예술 행위가 들리지 않는 소리를 찾아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개의 가상의 상태가 언어로서 결부되어 한 인간의 절대음감을 통해 이미지로 실재함을 보게 된다. 오늘날 가상의 이중적 양태가 통합되어 실재하는 사건들은 결코 생소하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회화에 대한 관점과 생산 방식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과거 회화에서 구상과 추상이 대립 관계였다면 현재는 일상화된 가상 이미지의 영향 아래 추상과 구상은 혼재되어 보이지 않는 것을 대상으로 판단하는 데 거부감이 없어 보인다. 구상과 추상이라는 대립 관계에서 벗어난다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대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하나의 이미지가 도출되는데 있어서 그 출발이 시각적이거나 또는 개념적인 것과 상관없이 실재적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회화의 그리기는 목적과 무관한 대상의 외피를 그리는 것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대상을 찾아가거나 혹은 추상적 형태를 만드는 것까지 기능이 확장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그리기 기능의 확장은 그리기를 통한 추론의 과정 즉 사변적 작업을 요구한다. 그리기를 통한 사변적 작업은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 모두 ‘가상’의 대상 또는 형태로 포착되어 이미지로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닮음을 전달하는 묘사와 맥락을 같이 한다. 가상이 실제로 작용하는 세계에서 묘사는 보이는 것에서 출발하는 방법이며 보이지 않는 것을 실체적 존재 형식으로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것을 발견하고 찾아내는 활동은 화가의 자기표현 이면의 공통 작용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묘사는 사변적 절차로써 그 기능이 확장되어 오늘날 회화의 생산 방식으로 다시 귀환했다.

박건, 손효정, 신재민, 이지효, 이숨의 작업을 보자. 이들은 하나의 이미지에 접근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가상의 대상 또는 추상적 형태를 만들고 찾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확장된 묘사의 기능을 사용하 고있다. 이지효의 작업에서 대상은 도달하는 종착지가 아니라 출발점이다. 외연을 형성하는 붓질은 물성에 준하여 회화적 사건을 만든다. 이와는 달리 이숨의 작업은 회화적 붓질이 만들어낸 가시화된 추상적 형태로 대상에 도달한다. 그리고 박건은‘기능’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그리기에 사용한다. 회화성을 배제하고 오직‘기능’의 추상성을 통해 메카닉의 실재를 직접적으로 가시화한다. 앞의 세 작가가 대상과 관련하여 가상의 대상을 만들고 있다면 신재민과 손효정은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 나아가고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기본요소는 대상으로 규정되지 않는 가변적인 고정값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회화적 사건이나 추상적 형태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작업에서 목격하는 것은 미지未知이기 때문이다. 다른 점은 신재민은 회화적 사건으로 도출되고 손효정은 산술적 부조리로 멈춘다는 데 있다.

이들이 발견한 추상적 대상은 사적私的인 형태이지만 확장된 묘사적 방법의 측면에서 이들이 조망하는 세계가 주제나 형식, 자기표현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좀 더 근원적인 이해의 방식에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해가 동반될 때 우리는 회화에서 새로운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안두진